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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19단 열풍, 수학재미 가위눌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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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 ] 이기종 |
작성일 |
2005-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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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6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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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가능
19단 열풍, 수학재미 가위눌릴라
[한겨레]
외우기 허실 들여다보니 책받침형 19단표, 19단 스티커, 19단 게임, 19단 대형 포스터, 19단 노래 시디,
….
‘19단 외우기’ 열풍이 점입가경이다. 초등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19단 관련 제품들이 날개 돋힌 듯이 팔
려 나가고 있으며, 서점가에선 19단 관련 책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 학원들과 학습지 업체들
도 기회를 놓칠세라 19단 외우기 특별강좌를 잇따라 만들고 있다. 열풍은 공교육의 안마당까지 침투해, 수
원시교육청은 지난해 9월부터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한 곳씩을 시범학교로 선정해 19단을 가르치고 있
다. 또 전국 100여 개의 초등학교에서 ‘재량학습’ 시간을 이용해 19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단 외우기 바람은 지난해부터 인도가 ‘정보통신기술(IT) 강국’이 된 이면에는 19단이 있다는 일부 언론
의 보도가 잇따르면서 촉발됐다. 19단이 인도의 유능한 정보통신기술(IT) 인력을 낳은 배경인 만큼 우리
도 정보통신 강국이나 수학 강국이 되기 위해선 19단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퍼진 것이다. 여기에 19단을 외
우면 좌뇌와 우뇌를 고루 발달시켜 지능 개발에 좋다는 보도가 겹치면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9단을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집중력과 암기력이 향상되면 연산력과 계산력, 수리력
이 길러지며, 수 개념이 확장돼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워 준다는 식으로 계속 확장된다.
대한수학회 회장인 연세대 민경찬 교수는 “수학은 사고 능력이 중요한데 19단은 주도적인 사고 능력을 키
울 수 있으며, 논리력과 수리력 발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19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단 시
범학교인 수원 율전초등학교 이유직 교감은 “연산 능력이 향상되고 사고 폭이 넓어지며, 특히 높은 학년
의 우수한 학생들은 큰 수의 약수나 배수를 구하고 분수를 약분할 때 19단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구구단 원리를 확대한 것이 19단이고, 초등 2학년 심화 과정에 12단이 들어 있다”며 “19단 외
우기가 교육 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천재교육 관계자는 “19단을 외우게 되면, 연산력, 계산 능력은 일정 정도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며 “기
업으로서는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면 부응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교사들과 교육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학 강국인 인도에서 19단을 외우고 있고,
19단의 장점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지만, 과연 모든 학생들이 나서서 19단을 외울 필요가 있는지, 또 실효
성은 있는지는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생 60% “외우기 힘겹다” “또 하나의 유행 아이들에겐 멍에될수도”우려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강완 교
수는 “수 감각은 어림산 능력, 규칙성 발견 등 여러 영역으로 이뤄져 있는데, 곱셈 규칙인 19단을 외워서
수리력, 수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교육 과정상 구구단
의 원리를 알면 19단이든 25단이든 100단이든 원리는 다 똑같기 때문에 따로 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세상의 어느 수학자도 19단을 외우려고 하지 않는데, 19단을 외워서 수학 영재가 된다고 주장하니 억지
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19단을 외워서 계산력이 빨라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제한적이어서 별로 쓸모가 없
다는 반론도 나온다. 가령 546X387처럼 19보다 큰 수로 이뤄진 곱셈에서 19단은 무용지물이다. 또 계산,
산수의 비중이 많은 초등 낮은 학년과 달리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 해결력이나 창의력과 같은 높은 수준
의 사고 능력이 수학 실력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는 수학 문제 가
운데 두 자리수 이상의 계산이 필요한 문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한양대 수학과 김용운 명예교수는 “모든 교육은 한 가지를 알고 열 가지를 써먹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인데 19단 열풍이 부는 것을 보면 교육철학이 얼마나 빈곤한지 알 수 있다”며 “십진법 중심, 구구단 중심
으로 편성된 우리나라 수학 교육 과정상 19단을 외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19단을 외워야 할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율전초등학교가 지난해 12월
학생 1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를 해 보니 무려 60%가 외우기가 힘들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외우
기 어렵다(44%), 외우기 불편하다(26%), 활용 영역이 좁다(19%), 경제성이 낮다(10%)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24년째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 누원초등학교 조성실 교사는 “2학년 때 외우는 구구단
도 한반 30명 가운데 6~7명 정도는 매우 애를 먹는데 19단까지 외우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엄청난 고통
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몇몇 아이들이 외우기에 나도 따라 해 봤더니 잘 되지 않았다”며 “19단을 외
우라고 하기 전에 지금 이 시간에도 수학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라”고 주문
했다.
수학교사들의 모임인 ‘수학사랑’ 회장인 서울 용산고 최수일 교사는 “컴퓨터를 0과 1만 쓰는 이진법을 적
용해 만든 것은 숫자를 적게 쓸수록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19단은 구구단보다 수십배 또는 수백
배의 암기 부담을 가져와 아이들의 뇌에 부하를 줄 가능성이 높아 수학적 사고력 신장을 오히려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두자릿수 곱셈을 다 할 수 있는 ‘KHM 고속계산법’이 전국 중학생들 사
이에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 계산법을 모르면 중학생이 아니라는 농담이 퍼질 정도였다. 하지만
채 몇년도 안 돼 이 계산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단 열풍에 대해 많은 교사들이 ‘제2의 KHM’을 우려
하고 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한겨레 2005-03-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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