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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20진법 곱셈법…인도서 유행 19보다 큰 숫자엔 쓸모없어
갑자기 정체불명의 19x19단이 나타난 모양이다. 구구(9x9)단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골칫거
리가 생긴 셈이다. 무책임한 언론에서 인도의 몇몇 사람들이 그런 일로 소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마구 퍼뜨
린 탓이다.
19x19단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우선 10진법과 구구단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0`에서
`9'까지의 10개의 기호를 이용해 수를 표기하는 방법을 `10진법'이라고 한다. 수를 나타내는 그런 기호들
은 7세기 경에 인도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해서 아라비아를 거쳐 세상에 소개됐기 때문에 아라비아 숫자
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10진법 표기법은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 부르기도 했던 수학자 피보나치가 발표
한 `계산판에 대한 책'에서 처음 소개된 것이다. 아홉을 나타내는 수를 9, 열을 나타내는 수는 10으로 나타
낸다.
우리가 10진법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를 세는 방법이 10진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메소포타미
아에서는 60진법을 썼고, 마야에서는 20진법도 사용했다. 출생연도를 표시하는 `간지'(干支)는 10진법에
해당하는 `간'(干)과 12진법에 해당하는 `지'(支)를 합쳐서 60진법으로 확장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최근까
지 12진법을 쓰기도 했다. 오늘날 IT 시대를 만들어낸 컴퓨터는 0과 1만을 이용한 2진법을 쓴다. 같은 기
호로 표기된 숫자라고 하더라도 진법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10은 10진법에서는 `열'을 나타내지
만, 2진법에서는 `둘'이 되고, 20진법에서는 `스물'이 된다.
두 수의 곱은 앞의 수를 뒤의 수만큼 더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둘 곱하기 셋은 언제나 여섯이 된다. 그러
나 그 결과를 표시하는 방법은 진법에 따라서 달라진다. 10진법에서는 `2x3=6'으로 표기되고, 2진법에서
는 `10x11=110'이 된다. 2진법에서는 `10'이 `둘', `11'이 `셋', `110'이 `여섯'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곱셈의 결과는 어떤 진법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양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애써
외우는 구구단은 10진법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곱셈의 결과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런 구구단만 있으면
아무리 복잡한 숫자들의 곱셈이라도 한순간에 해치울 수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19x19단은 아무리 보아도 쓸모가 없다. 19x19단을 아무리 잘 외우더라도 20x21을
계산하려면 역시 구구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19보다 큰 숫자들의 곱셈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이
다. 물론 19x19단을 응용할 수는 있겠지만 애써 그런 방법을 찾는 것 보다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된다. 더욱이 10진법에서 자리수가 다른 숫자들이 경계가 되는 `9'와는 달리 `19'에는 아무
특별한 의미가 없다.
만약 우리가 10진법 대신 20진법을 쓴다면 구구단 대신 19x19단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20
진법을 쓰게 될 가능성은 조금도 없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10진법을 근거로 만든 현재
의 19x19단은 아무 쓸모가 없다. 20진법에서는 `3x9'는 `27'이 아니라 `17'로 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
론 그런 경우에는 10진법에서 `10'부터 `19'에 해당하는 특별한 기호들도 새로 만들어야만 한다.
많은 것을 외워두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무조건 외우는 것이 능사도 아닐
뿐만 아니라, 기왕 외우려면 외울 가치가 있는 것을 외워야 한다. 휴지 조각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명백한
결과를 애써 외우는 것은 도무지 쓸모 없는 낭비일 뿐이다.
더욱이 수학은 곱셈이 아니다. 암산(暗算)을 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철저한 논리를 근거로 하는 수학에서 곱셈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아름다운 시
(詩)라도 한 편 외우는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좋은 투자가 된다.
2005/03/29 디지털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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