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주산의날 기념 주산인 수기공모전 대상 수상작]

주산을 손에서 놓은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물론 수학을 공부하며 항상 암산을 해왔으니 완전히 놓았다고는 볼 수 없겠다, 여전히 주산은 나를 소개하는 아주 멋진 수식어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덧셈을 처음 배웠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계산을 했나보다. 10이 넘어가는 수에 대해서는 발가락까지 훔쳐보았다고도 한다. 내가 일의자리 덧셈도 어려워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그걸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예스셈 학원에 처음 가게 되었다. 사실 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을 때 큰 기대는 없었고,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덧셈을 남들만큼만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는데, 그 누구보다 빨리 계산을 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산을 배울 때 처음엔 주판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주판을 이용해 계산을 하고, 주판이 익숙해지면 주판의 이미지를 복사해 코팅한 판에 대고 암산을 연습하고, 이후 판 없이 손만 움직이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띄우며 암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학원에서 책의 단계에 따라 분반을 했었는데, 보통 학년이 같은 아이들이 한 반을 이루었다. 나 역시 초급반부터 시작하였으나 숙제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다 해가서 선생님께서 계속 숙제를 더 내주셨고, 나는 그걸 다 해갔다. 그땐 선생님께서 나만 숙제를 많이 내주시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지금 같으면 왜 나만 더 내주냐 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집밖에선 불평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소심이어서 선생님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서 툴툴대며 숙제를 꾸역꾸역했다고 한다. 그래도 숙제를 꼬박꼬박해가 나는 금방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어린마음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암산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나서는 계산의 정확성과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무조건 빨리 계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동시에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학원 선생님, 친구들과 주산대회를 자주 다녔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메달과 트로피를 많이 받았다. 대회가 주로 서울에서 열렸는데, 주말에 친구들과 서울로 놀러가는 기분이라 시험에 대한 긴장감보다 서울 구경에 대한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차를 타고 한강을 가로지르며 나중에 크면 꼭 한강이 있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품었었는데, 대학에 입학한 후 과외와 봉사 때문에 매일같이 한강을 건너다니며 몸은 피곤해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여러 주산대회에서 입상한 뒤, 방송 출연을 제안 받아 촬영할 때 실수하지 않도록 암산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나 갑자기 촬영이 무산되어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예스셈 올림피아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 대회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방송 출연을 위해 연습한 것도 있고 하니 대회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남은 시간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대회에 참가하였다. 이때 예스셈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덕분에 신문에 내 얼굴이 실리고 방송 출연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주산을 배우면서 큰 좌절을 맛보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밤을 새서 주산을 연습했는데 속도와 정확성 모두 늘지 않았다던가, 주산이 재미가 없어서 도중에 그만두고 싶었다던가 하는 일이 나에겐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만능이 아닌 것이 4년 가까이 배운 피아노도 실력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지루하다고 느껴져 그만뒀고, 수영도 이틀 배우고 힘들다고 그만둔 적이 있다. 이렇듯 내 실력이 평균에 너무 못 미치거나, 일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나는 쉽게 포기하곤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산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다시 말해, 나는 주산을 꽤 잘했고, 주산에 흥미를 느꼈다. 이 둘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주산을 잘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스스로 기록을 깨는 것이 재미있었고, 재미있어서 더 열심히 했고 그래서 잘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노력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성취해내었던, 거짓말처럼 잘 풀렸던 시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생긴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일인데,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매일 주판과 초시계를 손에서 놓지 않고 무수히 많은 문제를 풀어내려가며 내가 분명히 깨달은 점은,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말로만 하는 노력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시간을 때우며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다가 아니라 끊임없이 집중해서 밀도 높은 노력을 쏟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취도는 노력에 비례하는데, 적당한 노력을 들이면 보통의 성취를 얻을 수 있고, 많은 노력을 들이면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좋은 머리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친구들이 결정적인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은 얻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끊임없는 양질의 노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주산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따라왔어요, 라고 말하려 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산을 배웠을 당시 어디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잘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내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밀어주었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밀려나간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나를 밀어준 요인 중에 내가 가진 개인적인 성향 외에 외부적인 요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예스셈 선생님의 열정이었다. 선생님께서 열정을 갖고 욕심 있게 지도해주셨는데, 만약 선생님께서 내가 숙제를 다 해갔을 때 다른 친구들이 다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더라면, 나는 적당한 노력을 들여 보통의 성취를 얻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재학 중인데, 선생님께서 가신 길을 이제 막 밟아나가기 시작한 제자로서, 미래에 멋진 선생님이 될 사람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욕심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늘 발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뭐든 과유불급이니 적당한 욕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줄 것이다.

주산이 잘하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왜 주산을 잘하고 싶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 지금은 어떤 과목을 공부할 때 이게 과연 나에게 필요한지를 우선적으로 따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사를 좋아하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표에 한국사 강의를 넣지는 않는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오직 좋아하고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만으로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이 어렵고, 그런 일을 찾을 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내 일에 진정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런 점에서 어린 나이에 주산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호기심에 이끌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볼 수 있고, 그럴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던 시기에 주산을 배웠다. 주산을 하는 동안에는 딴 생각 없이 오로지 주산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왜 이걸 배워야 하나를 따지지 않고 너무 재미있게 푹 빠져서 주산을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대학 입시를 걱정해서 학생과 학부모들도 주산? 그거 필요 없지 않아?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주산을 배웠을 때 얻을 수 있는 대학 입시와 관계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점들을 말해줄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주산을 배우면 계산 속도가 빨라져 자연히 수학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풀 수 있고, 검토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주산을 배우는 학생들이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주산을 처음 접했다할지라도, 주산을 배우는 동안만큼은 정말 재미있게, 완전히 주산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주산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과 그에 따라오는 높은 수학 점수뿐만 아니라, 평소 꾸준히 노력하는 습관과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주산을 배우며 각기 나름대로 얻어갈 것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주산으로 첫 단추를 잘 끼워서 앞으로 만나게 될 끼우기 어려운 단추들도 차분하게 잘 끼워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